연봉 1억, 그랜저, 송파·강동 아파트 “능력자 걱정마” vs “가장 애환 진짜” 대기업 임원 승진자 1% 미만은 현실 실책 들추는 드라마 부담인 통신업계
최근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화제다. 임원 승진을 앞두고 지방 공장 발령이 나자 불가피하게 희망퇴직을 선택하는 주인공 김낙수 부장을 안타까워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섣부른 동정은 금물이다. 드라마의 배경과 대사로 추측할 수 있는 김 부장의 조건들을 나열하면 무능한 꼰대가 아닌 최상위권 능력자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부장은 성균관대 출신에 대기업인 이동통신회사의 25년차 영업팀장으로 단 한 차례의 진급 누락 없이 부장까지 올라왔다. 그것도 임원 진급 가능성이 거론되는 말년 부장이다. 전·현직 임원들과 호형호제하며 우정을 다져왔을 정도로 사내 라인도 든든한 편이다.
전자공시시스템을 확인하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이통사 남성 직원 1인당 평균 급여액은 모두 1억원이 넘었다. SK텔레콤이 1억7500만원, KT가 1억1200만원, LG유플러스가 1억1400만원으로 집계됐다. 신입과 임원을 망라한 평균 보수이기는 하지만 김 부장의 급여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구성원이라면 대부분 받아갈 수 있는 공식적인 성과급과 개인·조직 목표를 달성했을 때 지급되는 영업부서 인센티브도 만만치 않다.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외제차를 구매하지 않았을 뿐이지 준대형 세단을 풀옵션으로 몰고, 골프를 친다. 김 부장의 자동차는 현대자동차의 그랜저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의 지난해 국산 승용차 차종별 운행 대수 자료를 보면 그랜저가 157만3377대로 가장 많았다. 중산층의 상징으로 불리며 수요를 확보한 모델이다. 올해 신차 가격은 5000만원에 육박한다. 영수증을 정리하며 머리를 감싸 쥐긴 하지만 240만원에 달하는 식사비도 일시불로 결제하고, 서류 가방도 별다른 고민 없이 300만원에 달하는 명품으로 바꾼다.
무엇보다 서울에 자가도 있다. 매매가 68억원짜리 고급단지에 거주하는 후배인 도진우 부장에게는 밀리지만, 그래도 거래가 20억원이 넘는 국민평형 아파트에서 아내·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집값이 급등하기 전에 투자해 상당한 시세 차익을 거뒀을 것으로 보인다. 문턱이 높고 몰딩이 체리색인 복도식 아파트인 점으로 미뤄 재건축이 진행될 가능성도 크다. 작중 김 부장의 아들이 강남·서초 출신이 아니라는 힌트가 나온 바 있어 아파트 소재는 송파·강동으로 추정된다.
김 부장의 아들은 연세대학교 상경계열에 재학 중이다. 아르바이트를 해 본 적도 없고 세상 물정도 모른다. 김 부장은 아들이 이력서에 써넣을 수 있는 번듯한 대외활동에만 집중하기를 바란다. 아들이 더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다면 재수·삼수도 지원 가능하다. 김 부장은 아내에게도 힘들게 노동할 필요가 없다고 거듭 강조해 왔다. 노후 대비용으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획득하려는 아내를 만류하기도 했다. 외벌이로도 가족 부양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김부장 이야기 흥행에…웃지 못하는 이통사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김부장 이야기에 몰입한다. 통상적으로 드라마 시작 전 ‘본 드라마는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단체 및 배경 등은 모두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노출되지만, 드라마 내용이 현실과 다르지 않아서다. 특히 통신업계의 평가가 그렇다.
23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인공지능(AI) 사내독립기업(CIC) 정비를 마무리했다. 사업부를 기업소비자거래(B2C) AI, 기업거래(B2B) AI, 디지털플랫폼, AI 데이터센터로 재구성하고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퇴사를 거부한 임직원은 비수도권으로 이동시키거나 직무 전환을 단행했다. AI 연구에 주력했던 개발자들이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영업점 운영과 인프라 관리를 담당하게 되면서 내부 불만이 터졌다. KT도 지난해 자회사를 설립하고 인력을 재배치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고위직이 직원들을 상대로 협박·폭언을 해 공분을 샀다.
김부장 이야기에서 김 부장의 입사 동기인 사무직 허태환 과장을 울릉도 현장직으로 파견해 심신을 압박하고, 김 부장을 서울본사에서 지방공장으로 쫓아내며 자진 퇴사를 종용한 것과 비슷하다. 생활 기반을 위협하는 조치는 노동법상 부당하지만 경영 효율을 우선시하는 조직의 모습을 직설적으로 다뤘다.
김 부장이 염원하던 임원 대신 백수로 전락한 것 역시 현실적이다.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별도 기준 상장사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일반 직원의 임원 승진 확률은 0.8%에 불과했다. 99.2%가 이사 직함을 달지 못하고 직장을 떠났다. 과거 KT에서 발생한 인터넷 속도 논란도 재점화됐다. 지난 2021년 정보기술(IT) 유튜버 잇섭이 KT가 제공하는 초고속 인터넷 상품에 가입한 뒤 속도를 측정한 결과, 10기가(Gbps)가 아닌 100분의 1에 불과한 100메가(Mbps)에 그쳤다고 폭로한 사건이다. 고가의 요금을 내고도 저가의 서비스를 받았다며 소비자 기만행위라고 비판했다. 당시 통신당국은 KT에게 과징금 5억원을 부과했다.
이통사들이 출혈 경쟁을 피하고자 공공사업을 돌아가며 수주하자고 약속하는 장면도 실제 사건을 반영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는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9개 공공기관이 발주한 12개 회선사업에서 입찰 담합을 벌였다. 공정위는 이통사들이 1600억원이 넘는 부당 이득을 취했다고 판단하고 과징금 133억2700만원을 부과했다. 시정명령과 고발조치도 이뤄졌다.
통신업계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초유의 사이버 침해 사태가 다뤄질까 봐 긴장 태세다. SK텔레콤에서는 지난 4월 유심 해킹 사건이 터졌고, KT에서는 지난 8월 무단 소액 결제 사고가 일어났다. LG유플러스도 지난달 해킹 정황이 발견됐다며 통신당국에 신고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이 필수인 만큼 사회적 충격이 컸다.
복수의 통신업계 관계자는 “연출상 과장된 부분이나 고증이 잘못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통신업계의 폐단과 고민을 유사하게 다뤄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라며 “지금도 이통사를 바라보는 대중들 시선이 부정적인데, 드라마로 인해 질타가 가중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