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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앞 주민들 "재개발 더 못 기다려…소송 불사"

임영신 기자(yeungim@mk.co.kr), 한창호 기자(han.changho@mk.co.kr)기사입력 2025.11.11 17:23:27

총리까지 나서 고층개발 반대하자…손해배상 청구 움직임
토지주들 "20년간 착공 못해
그동안 쌓인 채무만 7250억"
서울市 "종묘에 악영향 없어"
곧 시뮬레이션 결과 공개하고
유네스코 직접 설득 나서기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서울 종묘 인근 세운4구역의 고층 개발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세운4구역 주민들이 11일 "정부가 재개발을 막으면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하고, 이와 관련해 대법원이 시의 '규제 완화 조례' 개정을 적법하다고 판단했는데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에 이어 국무총리까지 가세해 연일 반대하자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며 반발한 것이다.
세운4구역 주민 대표 회의는 이날 다시세운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운4구역은 종묘 문화재보호구역에 속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보호구역 내 건축물보다 더한 과도한 규제와 국가유산청의 반복되는 인허가 횡포로 인해 2006년부터 현재까지 20년간 개발을 추진해왔는데도 착공도 하지 못했다"며 "누적된 채무가 7250억원에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호소했다. 이들은 "2009년에 세입자를 다 이주시켜 월세 수입마저 없어 생활비를 대출받아 연명하고 있는 극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했다. 이어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금융이자 손실 비용만 200억원을 부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주민들은 재개발을 막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검토하겠다는 정부에 대해 "국가유산청의 행위는 부당한 직권남용이자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 행위"라며 "재개발 사업 추진을 불가능하게 한다면 손해배상과 직권남용을 고발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이 세계유산영향평가 대상이 아니며, 고층 건물을 지어도 종묘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세계유산은 종묘 내에 있는 정전이다. 정전은 건축물 자체도 역사적인 의미가 있지만 사실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핵심 내용은 종묘제례악 같은 콘텐츠 소프트웨어"라며 "마치 그 앞에 건물이 지어지는 게 가장 중요한 판단 요소인 것처럼 선동하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종묘부터 거리가 총합계 500m가 넘는다"며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정전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다"고 짚었다. 서울시는 조만간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또한 오 시장은 "법적으로는 종묘 담장으로부터 100m까지가 영향 구역이다. 국제적으로 그 업무를 담당하는 국제기구조차도 그 너머는 언급한 적이 없다"며 "정부가 과잉 해석하고 확장 해석해서 계속 서울시의 도시계획에 불필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시도에 문체부 장관이 동조하신 셈이고, 총리까지 거기에 편승하신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서울시와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세운4지구 개발이 본격화한 2000년대 중후반 유네스코 측은 시에 보존지역 밖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세운4구역이 건축물 높이 때문에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의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받았을 때도 유네스코와 관련된 세계유산분과에선 결정적인 반대 의견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는 유네스코에 보존 상태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현재 종묘 보존 상태에 대한 설명과 종묘를 보존·관리하기 위해 그동안 시가 기울인 종묘~남산을 잇는 녹지축 조성 등 정책적 노력 등을 상세하게 담을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세운4구역 재개발 논란을 정치 쟁점화하기보다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타협점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가치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절차의 공정함이 중요한데, 시의 결정에 절차상 문제는 없어 보인다"며 "서로 다른 주장들이 합의를 통해 결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영신 기자 / 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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