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환경이 열악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뜻의 ‘개천에서 용 난다’는 옛말이 됐다. 요즘 시대에선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과 부동산 보유 여부가 평생의 부를 좌우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이목을 끈다.
1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산 격차 요인 분석과 정책 과제’ 보고서(김성아·이주미·박형존·한솔희·한수진)에 따르면 한국의 자산 불평등은 부동산과 대물림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심화하고 있으며 소득만으로는 이 격차를 메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 현재 우리 사회의 자산 분포는 매우 불균등한 구조를 띠고 있다. 보고서는 1995년부터 최근까지 한국 상위 10% 고자산가의 자산 점유율이 65% 안팎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인 덴마크나 인접 국가인 일본보다 높은 수준으로 자산 격차의 실재가 소득 격차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의 자산 격차를 심화시키는 주범으로는 부동산 중심의 자산 구조와 대출을 통한 자산 증식 행태가 꼽힌다.
분석 결과 부동산 자산을 보유한 것만으로도 중하위층의 자산 수준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었지만, 최상위층으로 갈수록 부동산과 금융자산 그리고 부채를 동시에 대규모로 보유하며 부를 증식하는 양상이 뚜렷했다.
빚을 내어 부동산을 사고 그 가치가 상승하면서 자산이 다시 불어나는 연쇄 고리가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는 것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청년기에 형성된 초기 자산의 차이가 시간이 흐를수록 좁혀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격차로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이 2007년 당시 청년층의 자산 상태가 2023년까지 어떻게 변했는지 그 경로를 추적해보니 초기 단계에서 부모로부터 상속이나 증여받았거나 부채를 적절히 활용해 일찍 부동산을 취득한 집단은 이후 자산 축적 과정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했다.
반면 사회생활 초기에 생활비 마련을 위해 빚을 지고 출발한 청년들은 시간이 지나도 자산 하위 분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남성, 여성보다 자산 우위…고학력·자영업자 유리
인구사회학적 특성에 따른 차별화된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성별에 따른 자산 격차를 보면 남성이 여성보다 자산 보유 확률과 수준이 모두 높았으며 이는 혼인 상태와 상호작용하며 더욱 강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교육 수준에 따른 자산 프리미엄도 존재했는데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자산 수준이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종사상 지위에 따라서는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고자산층에 진입할 확률이 가장 높았으며 상용직 임금근로자보다 자영업자가 자산 형성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반면 임시직이나 일용직 근로자 그리고 장애인 가구 등은 자산 하위 분위에 밀집해 있어 경제적 취약성이 굳어질 위험이 컸다.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부와 소득 간 상관관계는 점차 느슨해지고 있다. 이는 열심히 일해서 번 소득만으로는 자산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산 격차가 다시 소득 격차를 강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수도권과 아파트 중심의 자산 형성 행태 역시 지역 간 불평등을 넘어 세대 내와 세대 간 기회의 불평등을 굳히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보고서는 자산 격차 해소를 위해 생애주기별로 연계된 종합 정책을 마련하고, 중저자산층의 자산 형성을 우선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사회적 상속 개념 도입, 저소득층 지원 강화, 성 인지적 정책 설계, 균형 발전과 누진적 자산 과세 등을 통해 자산의 공정한 형성과 분배를 이루는 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