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 재개발 신축 아파트단지 대공방어시설 옥상 설치돼 조합, 인허가 받으며 군과 합의 수분양자들은 “못들었다” 반발
진흥 등 강남 재건축도 요구받아 고층화 市정책 軍규제와 마찰
서울의 한 신축 고층아파트 옥상에 입주민도 모르는 사이 대공방어시설 설치 공사가 진행되면서 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이 단지는 재개발을 통해 조성됐지만, 인허가 조건으로 ‘군사시설 설치’가 붙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앞으로 군의 군사시설 설치 요구와 서울시의 고층화 유도정책이 충돌하면서, 입주민과 군 간 갈등이 새로운 도시정책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4일 강북구청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북구 A아파트 입주민들은 지난 2일 강북구청 앞에서 집회를 실시했다. 주민들은 이 단지 옥상에 설치 중인 대공방어시설이 주민 사전 고지 없이 일방적으로 지어지고 있다고 구청측에 항의했다.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이 단지에 대공방어시설이 들어서게 된 건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 단지 높이가 위탁고도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대공방어 협조 구역 내 위탁고도(77~257m) 높이로 건축되는 건축물은 군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아야 한다. 대공방어 협조구역이란 원활한 군사작전 수행을 위해 국방부 장관이 지정·고시하는 지역을 뜻한다.
A아파트는 강북구의 한 재개발 사업을 통해 2022년 지어졌다. 조합은 지난 2020년 건축 심의 과정에서 수도방위사령부로부터 단지 설계상 높이가 군이 허용하는 건축 높이를 초과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군은 심의 통과를 위해서는 재설계를 통해 건축물 높이를 낮추거나, 또는 군사시설을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조합이 군사시설 설치 요구를 수용하며 건축심의를 통과했다.
문제는 이후 2022년 실시한 입주자모집공고에서는 이 같은 사실이 적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A아파트 입주자모집공고를 살펴보면 ‘옥탑층에 의장용 구조물, 위성안테나, 이동통신 중계기, 피뢰침 등 시설물이 설치돼 일조권, 조망권, 소음진동, 사생활 침해 등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수분양자들은 옥탑층에 설치될 수 있는 구조물에 ‘군사시설’은 포함되지 않아 ‘중대한 사실 고지’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조합장은 “군 측에서 보안 유지를 요구했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법적 처벌까지 받을 수 있어 입주자모집공고상 적시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입주민들은 강남구 ‘개포프레지던스자이’의 경우 입주자모집공고에 옥탑층에 방공호와 군사시설이 설치될 수 있다는 점이 명시됐다고 주장하며 이는 ‘고의로 중요 사실을 누락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입주민은 “해당 군사시설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설치되는지 입주민들에게 전혀 공유된 바가 없어 일부 주민들은 큰 불안감을 안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단지는 작년 8월 입주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준공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유는 기반시설 조성이 완료되지 않은 것과 함께 조합이 인허가 과정에서 수도방위사령부 측에 약속한 군사시설 설치 의무를 아직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주민들은 1년 가까이 준공이 미뤄지고 있는 이유가 군사시설 미설치 때문이라는 점이 최근 공사 강행 과정에서 드러난 것 역시 문제라고 지적한다.
주거시설에 대공진지가 본격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한 건 서울시가 ‘아파트 최고 35층 룰’을 폐지하며 서울 곳곳에서 초고층 정비사업이 추진되면서다. 규제 완화에 따른 건축물 높이 상향이 국방 정책과 충돌하며 잡음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서초구 진흥아파트, 도봉구 창동 상아1차 등도 정비사업 건축 설계 과정에서 대공진지 구축을 요구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갈등이 서울 전역에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강남을 비롯한 서울 곳곳에서 고층 재건축이 진행 중인데 도심 내 상당수 지역은 군의 대공방어 협조구역 또는 고도제한 통제구역에 중첩되어 있다”며 “북한의 드론 출현 이후 대공진지 구축 필요성이 커진 만큼 군의 이해와 군사시설을 기피하는 주민간 갈등이 더 빈번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군 관계자는 “대공방어협조구역은 관계 법령에 근거해 서울 시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설정한 지역으로, 원활한 군의 작전활동을 위해 일부 단지에 군사시설이 설치되는 것에 시민들의 양해와 지지를 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