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뷰 임대 원치 않는 단지 유사한 현금 기부채납 검토 조합들 “현실적 절충안” 반응 전문가 “위치보다 물량 더 중요”
오세훈 서울시장이 27일 서울 시내 정비사업장의 ‘소셜믹스’ 제도 운영과 관련해 유연한 적용을 지시한 배경에는 최근 잇따른 한강변 재건축 단지들의 반발과, 그에 따른 정비사업 지연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서울시는 그동안 모든 재개발·재건축 단지에 분양과 임대주택을 동일하게 섞어 배치하는 ‘동별 균등 배치’ 원칙을 고수해 왔다.
이로 인해 조합원은 저층 비선호동에, 임대가구는 고층 선호동(한강 조망동)에 배치되는 ‘역차별’ 우려가 커졌다. 최근 심의 단계에 이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여의도 공작아파트 등 한강변 재건축단지가 대표적이다. 한강 조망권 등 특정 동의 입지 가치가 현격히 다른 단지 구조에도 일률적으로 이를 적용하면서 실거주 수요자와 조합 간 갈등이 커졌고, 결과적으로 정비사업 동력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오 시장의 정책 유연화 시사는 이런 비판을 일정 부분 수용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시는 “임대주택 차별을 방지한다는 대원칙은 유지하되, 단지별 특수성을 고려해 한강변 고층 주동 등 특정 위치에 임대를 넣지 못할 경우 추가 기부채납 등 대체적 공공기여 방식으로 정책 효과를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가치의 차이를 인정하되, 공공성은 다른 방식으로 환수한다’는 새로운 해석이 공식화된 셈이다.
압구정과 목동 등 주요 재건축 단지들에서도 이번 사안을 예의 주시하며 집단 반발 움직임까지 일자 서울시는 입장을 선회해 유연한 제도 운영으로 방침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유사한 선례를 이미 남긴 바 있다. 남구 대치동 구마을 재건축 단지인 ‘에델루이’는 일반분양과 임대주택의 동·호수 추첨을 별도로 진행해 사실상 임대와 일반분양을 분리했다. 단지 내에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섞어 배치하는 서울시의 소셜믹스 원칙을 어긴 셈이다.
서울시는 해당 단지가 임대주택을 별도로 추첨하는 것을 조건부로 수용했다. 대신 조합에 20억원의 현금 기부채납을 하는 방식으로 벌금을 부과했다. 감정평가 주택가액 차액의 3.5배를 적용한 금액이다. 토지 감정평가금액이 1㎡당 3880만원인 걸 감안하면 52.41㎡ 용지 규모의 기부채납에 준한다. 서울시는 이런 사례를 참고해 소셜믹스에서 한강뷰 임대주택 기부채납 대안을 검토 중이다. 이 사례는 임대 차별 논란을 최소화하면서도 조합원 재산권 보호 논리를 일정 부분 수용한 절충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최근 서울시와 마찰을 빚고 있는 조합들 사이에서도 현실적인 선례로 회자되고 있다.
복수의 한강변 재건축 조합 관계자들은 “기부채납으로 대체한 ‘에델루이’ 모델이 정책 원칙과 사업성 사이에서 현실적 균형을 찾은 사례가 아니겠느냐”며 “유사한 방식의 적용 가능 여부를 문의하는 조합원이 많다”고 전했다.
한강변 주동 임대주택 미배치에 따른 추가 기부채납은 서울시 입장에서도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빈 땅이 부족한 서울시 입장에서 양질의 임대주택 확보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오 시장은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매년 장기전세주택II(미리내집)를 4000가구 이상 공급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는데, 물량 확보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기계적 소셜믹스 대신 추가 기부채납을 통한 임대주택 물량 확보는 서울 내 주택 공급을 촉진하면서 동시에 실속도 챙기는 ‘묘안’이 될 수 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시가 소셜믹스 원칙 적용을 이유로 정비조합의 설계 자율성까지 침해하는 것은 지나친 행태”라며 “조합의 조망권보다는 충분한 임대주택 물량 확보에 정책이 집중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단순한 ‘배치 위치 조정’ 문제가 아닌, 서울시 주거 정책의 정체성과 신뢰도를 가를 시험대라고 평가한다. 다른 부동산 정책 전문가는 “소셜믹스는 배치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고소득 분양자와 저소득 임대 입주자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설계·운영까지 통합적으로 고민해야지, 조망권 하나로 정책을 흔들면 정책 철학 자체가 모호해진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향후 통합심의나 사업시행인가 과정에서 이 같은 유연 적용 방식을 개별 단지 여건에 따라 허용하되, 기부채납 기준이나 예외 요건을 명확히 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가 다시 꺼내 든 절충 카드가 정비사업의 숨통을 틔우면서도 소셜믹스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화될 수 있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