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박재영 기자(jyp8909@mk.co.kr)기사입력 2026.09.15 05:51:57


서울 주요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에서 시공사 선정 당시 건설사들이 내건 특화설계가 인허가 과정에서 달라지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수주 경쟁력으로 내세운 동 배치와 평형 등이 심의 과정에서 바뀌면서 조합원 갈등을 낳거나 사업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1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4차 재건축 사업은 최고 49층, 11개 동, 1833가구 규모로 지난달 서울시 통합심의를 조건부 통과했다. 시공사인 삼성물산이 수주 당시 제안했던 7개 동보다 4개 동 늘었다.
삼성물산은 수주 당시 조합이 계획한 12개 동을 7개 동으로 줄이고 총 1320가구를 한강 조망이 가능하도록 설계해 모든 조합원이 한강뷰를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규 단지명도 문화유산(Heritage)과 강(River), 숫자 7(Seven)을 결합한 ‘래미안 헤리븐 반포’를 제안했다.
그러나 올해 초 서울시 사전 자문에서 단지 북측으로 이전한 청담고의 일조권 등이 문제가 돼 심의안이 반려됐고, 동 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계획이 수정됐다. 조건부 의결된 통합심의안에는 북측 학교 인접 구간의 높이 조정과 십자형 공공보행통로 등도 반영됐다.
일부 조합원 사이에서는 변경된 배치로 당초 약속한 한강 조망이 온전히 구현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한강뷰 보장을 우려하는 조합원이 적지 않다”면서도 “사업 속도가 늦어지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수주 공약, 심의 문턱서 잇단 수정
여의도 공작아파트에서는 지난해, 2023년 시공사 선정 당시 설계안과 사업시행자인 KB부동산신탁이 이후 제출한 통합심의안이 달라졌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소형 주택형은 늘고 대형 주택형은 줄어든 데다 소유주 고층부 우선배정 조항 등이 쟁점이 됐고, 결국 토지등소유자 전체회의에서 정비사업운영위원 전원이 해임됐다.
수주 당시 공약이 인허가 문턱을 넘지 못한 사례도 있다. 용산구 한남2구역 재개발 시공사인 대우건설은 2022년 수주 당시 남산 경관 보호를 위한 고도제한을 118m까지 완화해 최고 층수를 높이겠다는 ‘118 프로젝트’를 내세웠다. 그러나 서울시가 고도제한 완화에 반대하면서 계획은 무산됐고, 조합에서는 공약 불이행 책임론이 불거져 시공사 재신임 여부를 묻는 총회까지 열렸다.
조합 요구로 설계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성수전략정비구역1지구는 올해 4월 GS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GS건설은 ‘리베니크 자이’를 제안하며 지하 5층~지상 최고 64층, 13개 동, 3014가구와 조합원 전원 한강 조망, 확정 공사비 등을 주요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홍보관 운영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한강과 가장 가까운 전면부에 중형 평형 배정을 요구하면서 조합과 GS건설은 주력 주택형을 전용면적 59㎡에서 84㎡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일조 문제가 발생해 저층 건축물도 추가됐다.
◆화려한 제안 뒤 ‘변경 가능’ 단서
서울시는 신속통합기획과 통합심의를 통해 정비사업 기간 단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시공사 선정 이후 인허가나 조합 요구 등으로 핵심 설계를 다시 손보고 내부 갈등까지 빚는 상황이 반복되면 절차 단축 효과도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특화설계 논란의 배경에 정비사업 특유의 수주 구조가 있다고 지적한다. 건설사가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특화설계를 내걸지만 정식 공사도급계약 체결 전 단계의 제안인 만큼 이행 방식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조합이 입찰 단계부터 이행 조건을 문서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특화설계는 정식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기 이전인 입찰 단계의 제안으로, 시공사 선정 후 가계약을 쓰더라도 이행 방식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제안서에도 ‘변경될 수 있음’ 등의 단서가 붙는다”며 “입찰 때부터 이행 조건을 자료에 명시적으로 기재해 증거를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건설사들이 수주를 위해 그림을 화려하게 그려 과장하는 경우가 있다”며 “시공사 선정 후에는 조합이 시공사의 도움을 받는 관계가 되기 때문에 설계가 바뀌어도 문제 삼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시공사가 수익성과 브랜드 전략에 맞춰 평면과 배치를 바꾸자고 요구하면 조합이 이를 수용하게 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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