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거래허가 규제와 관련한 역설적 상황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구 단위 아파트 통규제로 인해 저가 아파트는 규제 대상에 편입되는 반면, 고가 연립주택은 규제에서 제외되며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다. 또 토허제 실시 이후 실거주 목적 주택 매수만 가능해 매물이 시장에서 급감한 가운데 매수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최고가에 주택을 매수하는 신고가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토허제의 수요 억제 약발도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0일 서울시에 따르면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과 관련한 민원이 쇄도하고 있다. 우선 강남 3구와 용산구에 위치한 나 홀로, 저가 아파트 집주인들의 불만이 크다. 이들 주택은 시세가 4억~5억원 수준으로 주택 가격이 높지 않고, 투기 수요가 유입될 우려도 작지만 행정구역상 규제 지역에 위치한다는 이유로 토지거래허가 대상에 포함됐다. 이 때문에 집주인들이 주택 매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표적으로 용산구 도원동 제일아파트, 도원아파트, 용문동 대성아파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용산구의 한 나 홀로 아파트 집주인은 “가뜩이나 규모가 작은 단지여서 주택 매도가 어려운데, 토허제까지 겹치면서 집을 보러 오겠다는 매수자가 아예 사라져버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서울시는 “규제엔 기준이 필요하고, 예외를 두면 오히려 규제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주택 유형에 따른 규제 방식은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공시가격 1억원대 저가 주택임에도 아파트라는 이유로 규제 대상에 편입되는 한편, 공시가격 100억원대 고가 주택은 ‘연립주택’으로 분류되며 규제에서 벗어나는 일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용산구 한남동 대표 고가 주택인 한남더힐은 총 32개동 중 11개동이 4층 이하로 지어져 연립주택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공시가격이 100억원을 넘는 고가 주택임에도 토지거래허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토허제는 집주인의 개별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예를 들어 병원비나 생활비를 위해 주택을 꼭 매도해야 하는 상황에서 만약 세입자가 거주하고 있다면 주택 매도가 어렵다. 일시적 2주택 비과세를 위해 주택을 매도해야 하거나, 상속 문제로 급히 팔아야 할 때도 예외 없이 규제를 적용받는다. 경우에 따라 주택 매도에 제한을 받아 세금을 더 많이 내게 되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는 셈이다.
토허제 효과가 두 달도 채 가지 못하고 강남권을 중심으로 연일 신고가 거래가 체결되며 규제 당위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송파구 잠실 엘스 아파트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31억4000만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경신했다. 지난 2월 국제교류복합지구 인근 지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되며 국민 평형이 30억원을 돌파한 뒤 허가구역 재지정으로 4월 한 달간 거래가 없다가 5월부터 속속 거래가 체결되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91㎡도 지난달 44억원에 거래되며 지난 3월 최고가(42억7500만원)를 경신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에도 이처럼 신고가 거래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로 매물 급감이 거론된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강남 3구와 용산구 아파트 매물 건수는 이날 기준 총 1만8065건으로 집계됐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지정을 발표한 지난 3월 19일 매물 건수(2만4801건) 대비 27%나 줄어든 수치다. 자치구별로 보면 같은 기간 송파구 아파트 매물이 6760건에서 4344건으로 약 35.7%나 급감했다. 용산구 매물도 1955건에서 1369건으로 30%가량 줄었다. 다음으로 서초구(7482건→5349건), 강남구(8604건→7003건) 순이었다.
세입자 거주 주택은 토허제하에 매매가 불가능해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인 탓이다. 하지만 금리 인하 환경이 본격 조성되며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자 집주인들이 가격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매수자들은 선택권이 줄어들며 다소 높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매도자 우위 상황에서 주택 매수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토허제는 투기 수요를 차단하는 목적인 만큼 실수요자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된다는 점에서 규제 의미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