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2위 양돈업체서 44년 근무 수의사 출신 필리핀 콘스탄테 팔라브리카 축산차관 인터뷰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탓에 양돈 50% 피해” “차단 방역 힘썼지만 백신 없으면 효과 불충분” “한국산 백신 활용해 ASF 공동 대응하길 기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을 막기 위해서는 차단 방역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백신 접종을 동시에 진행해야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합니다.”
콘스탄테 팔라브리카 필리핀 농업부 축산차관은 25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차단방역은 질병 유입 위험을 낮추고, 백신은 실제 감염 위험에 대비하는 역할을 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팔라브리카 차관은 2년 전 농업부에 합류하기 전까지 필리핀 2위 양돈기업인 로비나팜스에서 44년간 근무한 수의사 출신으로 ‘Dr.단테’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현지 최고 방역 전문가로 통한다. 국내 기업들이 제조하는 ASF 백신에 관심이 많은 그는 대한수의사회ㅘ 한국동물약품협회 관계자들과 미팅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팔라브리카 차관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한국 기업에서 개발 중인 ASF 백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현재까지 확보된 시험 결과를 보면 상당히 인상적이다. 특히 백신을 접종한 번식돈뿐 아니라 그 자돈들에게서도 방어 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최종 결과를 기다려야 하지만 예정대로 시험이 마무리된다면 올해 필리핀에서 3분기말~4분기 중으로는 상업적 활용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필리핀 입장에서는 ASF를 통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매우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현재 필리핀의 ASF 상황은 어떠한가.
▷필리핀에서는 2019년 7월 ASF가 공식 발생했다. 이후 양돈산업 전체에 매우 큰 피해를 남겼다. 전체 사육 규모의 약 40~50%가 영향을 받았다. 모돈 기준으로도 절반 가까운 규모가 손실됐다. 정부는 이동 통제, 방역 강화, 지방정부 협력체계 구축 등 다양한 조치를 시행해 왔다. 그러나 필리핀은 7000개 이상 섬으로 구성된 국가이다보니 중앙정부가 모든 지역을 일률적으로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소규모 가족농 형태의 이른바 ‘백야드 농장(Backyard Farm)’ 비중이 높다. 대형 상업농장과 달리 방역 기준을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ASF 확산을 막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차단방역(Bio Security) 강화뿐 아니라 백신 접종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정부가 확보한 약 50만 도즈의 ASF 백신은 이미 농가에 공급돼 대부분 사용이 완료된 상태다.
-필리핀에서는 ASF가 어떻게 시작됐다고 보고 있나.
▷초기 발생은 소규모 농장에서 시작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음식물 잔반을 돼지 사료로 사용하는 과정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필리핀 일부 지역에서는 음식점에서 나온 잔반을 수거해 돼지에게 급여하는 관행이 있었다. ASF 바이러스는 가공되지 않은 돼지고기 제품 안에서도 장기간 생존할 수 있다. 감염된 돼지고기가 포함된 잔반이 사료로 사용되면서 바이러스가 농장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필리핀 양돈산업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모돈 규모 약 100만 마리 수준이다. 모돈 한 마리가 평균 10마리 정도의 자돈을 생산한다고 가정하면 전체 사육 규모는 약 1000만~1100만 마리 정도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축산업은 필리핀 농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돼지고기는 필리핀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단백질 공급원 가운데 하나다. 다만 ASF 이후에는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으로 인해 일부 소비가 닭고기로 이동한 상황이다.
-필리핀 양돈산업의 생산성은 어느 수준인가.
▷평균적으로 모돈 1마리당 연간 출하두수(PSY) 15~17두 수준이다. 그러나 현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농장들은 PSY 25두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우수 농장은 30두 이상도 가능하다. 필리핀 양돈산업은 아직 생산성 향상 여지가 크다고 생각한다. 생산성이 낮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ASF 이후 농가들이 외부 유전자원 도입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종축이나 개량 품종을 들여오면 질병 유입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농장 운영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무엇인가.
▷단순히 좋은 종돈을 보급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농가 교육과 차단 방역 체계 구축이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ASF 피해 농가를 대상으로 재입식을 추진하고 있으며, 생산성이 높은 종돈을 공급해 산업 회복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향후 10년 동안 매년 200억 페소 규모의 축산 지원 예산을 투입하는 법안도 마련됐다. 해당 재원은 동물보건, 시설 현대화, 교육 프로그램, 우수 종축 보급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44년간 양돈업에 종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할 때 ASF 대응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보나.
▷가장 큰 교훈은 ASF는 단순한 방역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차단 방역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제로 내가 근무했던 필리핀 2위 규모 대형 양돈기업에서도 소독, 이동통제, 진단검사 등 방역 체계 구축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지만 ASF 발생을 완전히 막지 못했다. 한국의 경우 지형적 특성상 야생 멧돼지가 ASF 바이러스 확산의 주요 매개체로 지목돼 왔으며, 그동안 이동 차단 펜스 설치 등 다양한 방역 정책을 시행해 왔다. 하지만 ASF는 야생동물, 사료, 차량 이동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산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 수단만으로 완벽하게 통제하기 어렵다. 결국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철저한 차단 방역과 백신 접종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차단 방역은 질병 유입 위험을 낮추고, 백신은 실제 감염 위험에 대비하는 역할을 한다. 내 경험상 두 정책이 함께 적용될 때만 ASF를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양돈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 이는 필리핀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모든 양돈국에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양돈산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은 매우 현대화된 생산 시스템을 갖춘 국가다. 생산성 측면에서도 배울 점이 많다. 혁신이란 결국 다른 나라의 우수 사례를 배우고 적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생산 시스템과 경영 방식, 농장 운영 노하우를 배우고 필리핀 현실에 맞게 적용하고 싶다. 한국은 돼지고기 소비량도 높고 생산 효율성도 뛰어난 만큼 필리핀이 참고해야 할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민간기업 경영인에서 정부 관료가 된 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민간에서는 모든 판단 기준이 기업의 수익성과 효율성이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식량안보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민간기업에서는 의사결정을 하면 몇 시간 안에 실행할 수 있지만 정부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절차를 고려해야 한다. 어떤 정책 하나를 추진하는 데도 수많은 협의 과정이 필요하다. 다만 민간에서 쌓은 경험 덕분에 어떤 부분이 비효율적인지 잘 알고 있다. 지금은 그런 경험을 활용해 정부 시스템을 조금씩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다.
-한국 측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국과 필리핀은 축산업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특히 ASF 대응 분야에서는 양국이 경험과 기술을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개발 중인 ASF 백신이 성공적으로 상용화된다면 필리핀뿐 아니라 ASF로 어려움을 겪는 여러 국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양국이 함께 협력해 보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축산업을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