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주거건물 절반 450만호
30년이상 주택 낡은 배관 지뢰밭
장마철 ‘누수’ 사회적 갈등 키워
‘매도인 하자담보 책임’ 특약 활용
“천장에 물 얼룩이 점점 번지는데 윗집은 ‘우리 집은 괜찮다’며 좀 더 기다려 보라고만 합니다. 비오면 더 심해지는데 천장에서 물이 쏟아질까 봐 무서워요.”
경기도 수원시의 준공 30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김 씨는 “윗집은 계속 전화 안 받고, 당장 이사 갈 수도 없고 정말 답답하다”며 “장마철이 무섭다”고 하소연했다.
여름 장마철이 본격화하면서 주택 ‘누수’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체 주택의 절반 이상이 준공 30년 넘은 노후 주택이다 보니 배관 노후화, 옥상이나 외벽 틈으로 인해 누수 사고가 잦다. 장마철에는 더 심해져 누수로 인한 책임 소재와 피해 보상을 놓고 입주민 간 갈등이 빈번하다. 문제는 대부분 분쟁이 ‘원만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더 큰 피해로 번진다는 점. 전문가들은 국내 주택 시장에서 누수는 ‘사회적 문제’라며 누수 분쟁을 조정하는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울 서대문구 준공 25년 차 빌라에 사는 박 모 씨는 요즘 누수로 잠을 못 잔다. 지난주부터 화장실 벽면에 누수 얼룩이 번지더니 이번 주에는 작은 방까지 습기가 차올랐다. 박 씨는 “윗집은 ‘내 책임이 아니다’라며 전화도 안 받으니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국토교통부 ‘2023년 전국 건축물 현황’에 따르면, 전국 주거용 건축물 458만132동 중 52%가 준공 30년 이상 된 낡은 건물이다. 아파트, 단독주택, 연립, 다가구·다세대 등 여러 유형의 주택을 동 기준으로 집계한 결과다. 20년 차 누수 탐지업체 관계자는 “30년 전 지은 건물은 배관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옥상이 갈라지거나 외벽 틈으로 비가 들어오기도 한다”고 했다.
누수도 문제지만 누수를 해결하는 과정은 더 지난하다. 누수의 원인 파악, 피해 보상 등을 놓고 입주민 간 합의가 쉽지 않다. 갈등이 심화해 송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2월 수원지법은 누수로 인한 피해를 주장하는 입주민이 다른 입주민들과 배상 문제로 갈등을 겪자 수도시설을 못 쓰게 했다며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집합건물 소송을 담당하는 부종식 라움 변호사는 “누수가 발생하면 피해 세대는 누수가 잡힐 때까지 불편하고, 책임 소재가 있는 곳은 비용 때문에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피해가 더 커지는 악순환이 된다”고 했다. 부 변호사는 “의료분쟁이 있을 때 정부가 조정위를 통해 적극 중재하듯, 누수도 전 국민이 겪는 문제인 만큼 정부의 적극적 중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누수 발생 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인 파악이다. 신뢰할 수 있는 누수 탐지 업체를 찾아서 원인을 파악하고, 누수 피해 세대는 피해 현황을 사진 등 증거로 보관해야 한다. 소송을 통해 책임 소재가 있는 대상에 공사비용, 인테리어, 이사 및 보관 비용 등 금전적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승소했는데도 보상을 못 받으면 책임 세대 부동산에 대한 압류 및 강제경매 신청도 가능하다. 부 변호사는 “만약 누수 원인이 윗집이라면 윗집은 이를 외면할 게 아니라 적극 해결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수 피해를 보장하는 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누수 사고에 대비하는 방법이다.
통상 누수 소송은 6~8개월 걸린다. 긴 시간과 소송 비용이 부담되면 정부 기관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아파트·연립·다세대 중 500세대 이상이면 중앙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에 신청하면 된다. 단 이곳은 건물의 공용부 관련 유지보수에 대한 분쟁만 담당한다. 조정위원회 관계자는 “세대 간 누수 문제는 하자보수 기간 이내면 하자위원회, 보수 기간을 넘겼으면 민사소송으로 해결해야한다”고 했다.
500세대 미만은 지방분쟁조정위원회, 단독·다가구는 집합건물 분쟁조정위원회, 임대주택은 임대주택 분쟁조정위원회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공동주택 분쟁 조정위는 조정까지 30~60일 정도 걸리며, 비용도 1만원(수수료)으로 소송보다 저렴하다. 다만 조정위가 내린 결론을 ‘강제’할 수는 없다. 조정위 관계자는 “조정 신청자가 합의 결과를 거부하면 우리가 강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집을 매수한 뒤에 ‘누수’가 발생한 경우도 문제다. 부 변호사는 “원래부터 있던 하자라고 입증하기 어렵다. 그러나 계약할 때 ‘매도인 하자담보 책임’ 특약을 넣으면, 하자를 안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하자담보책임을 매도인에게 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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